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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p. 4
    시즌별 리뷰/시즌 7 2024. 6. 19. 00:58

    Millennium

    각본 빈스 질리건 &프랭크 스포트니츠

    감독 토마스 라이트

     

     

    teaser에서부터 뭔가가 거슬렸다. 그런데 꼭 집어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저 흐릿한 머릿속을 둔하게 두드리는 무언가가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데 첫 등장한 프랭크 블랙이 이쪽을 돌아보는 클로즈업에 편곡된 <밀레니엄> 테마가 깔리는 순간 알았다 - <밀레니엄>은 구색용인 것이다.

     

    나는 종영된 시리즈 <밀레니엄>과의 크로스오버로서 이 에피소드가 좀더 <밀레니엄> 색채를 띨 줄 알았다. 내용상으로도 그런 함의가 컸다. Millennium은 프랭크 블랙이 x파일에 가담하는 게 아니라 M&S가 밀레니엄 세계에 뛰어드는 에피소드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프랭크 블랙이 나온다는 사실 외에 <밀레니엄> 월드가 전개되는 느낌을 한번도 받지 못했다. 사자들의 환생이 아마게돈을 열 것인가, 심판의 날은 과연 오는가 - 그런 스릴과 긴장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세기말을 넘긴 다음이라서가 아니다. <밀레니엄>도 세기말을 지난 다음에 보았다. 그래도 온갖 이유로 투쟁하는 밀레니엄 그룹 투사들의 맹신은 나를 사로잡았고, 까마귀의 예언과 지진(The Fourth Horseman)은 눈을 뗄 수 없는 극적 서스펜스를 조성했다.

     

    Millennium의 네크로맨서와 전 밀레니엄 멤버들은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밀레니엄 사건을 메인 플롯으로 삼고도 <밀레니엄> 전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클라이막스와 엔딩에서 가장 큰 약점을 드러낸다. 지금까지 <밀레니엄>적 긴장감과 박진성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에 한낱 광신자로 그려진 마크 존슨의 주장대로 사자들이 부활했는데도 아무런 정서적 임팩트가 없다. 특히 종교인 스컬리가 느낄 파장이 전혀 그려지지 않았다(스키너에게 한 "All things considered?"는 거의 Detour에서 암 투병 이야기를 꺼낸 것만큼이나 형식적이었다). 슬래셔 무비처럼 좀비만 해치우면 모든 게 오케이다. 세기말의 히스테리가 낳은 삶과 죽음을 넘나든 사건이 고작 해프닝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다같이 웃고 있는 라스트 씬의 프랭크 블랙과 M&S에서 그런 느낌은 절정에 달했다. (종교 문제에 관한 한 멀더는 늘 국외자로 그려지니 그렇다 치고) 바로 앞 장면만 해도 "밀레니엄 그룹이 정말 종말을 부를 수 있을까요?" "그들 생각이 그렇다는 건 압니다"란 무거운 대화를 주고받던 스컬리와 블랙이 계시록에 예언된 "The Four Horsemen" 중 3인일지 모르는 시신의 환생을 목격하고도 언제 그랬더냐 싶게 태연하다.

     

    Millennium을 쓴 것은 <밀레니엄>에 거의(스포트니츠) 또는 한번도(길리건) 가담하지 않은 <x파일> 작가들이다. 그들은 사건에 대한 M&S의 반응을 쓸 수 있을 만큼 밀레니엄 그룹의 성격을 모른다(그들의 목표는 고작 계시록의 실현이 아니었다). DD와 GA가 스스로 판단해 반응을 연기할 만큼 설득력 있는 밀레니엄 사건도 만들 줄 모른다. <밀레니엄> 월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밀레니엄>의 걸작 에피소드를 많이 감독한 토마스 라이트는 M&S로 작품 연출하는 법을 모른다. 각본은 M&S를 아는 <x파일> 작가에게 맡기고 분위기는 <밀레니엄>을 아는 <밀레니엄> 감독에게 맡긴 것은 크로스오버의 부담을 덜기 위한 결정이었겠지만, 쌍방의 약점을 보완하려던 계획은 쌍방의 강점만 상쇄하는 결과가 되었다. M&S가 아마게돈을 열지 모를 "The Four Horsemen"의 구성을 막으려는 것인지(<밀레니엄> 관점) 도굴을 한 사이코 광신자와 좀비들을 찾아내려는 것인지(<x파일> 관점), 확실한 관점이 서지 않은 Millennium은 DD와 GA에게 군데 군데 애매한 연기를 하게 했고 클라이막스로 갈수록 박진성이 떨어지게 했다.

     

    밀레니엄 사건은 <밀레니엄> 식으로 풀어가야 되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밀레니엄>은 극히 폐쇄적이고 자기완결적(self-contained)인 시리즈다. 물론 <x파일>도 그렇지만, 내용상 자연계(이상심리, 돌연변이, 외계인)와 인간 사회(음모)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M&S 월드와 달리 <밀레니엄>은 속이 아닌 성, 초월의 문제가 제시되는 세계다. '설명할 수 없다'는 점에 있어서는 <x파일>보다 더한 시리즈였던 것이다. <밀레니엄>에 그룹과 신념은 다르지만 문자 그대로 선악을 '식별'할 수 있는 초능력자 프랭크 블랙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며, 밀레니엄 사건을 해결하는 것은 오직 프랭크 블랙일 수밖에 없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그를 모르는 길리건/스포트니츠는 그를 <x파일>의 여느 게스트와 다름 없이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 극적으로 이것이 가장 큰 문제를 야기한 것은 블랙이 입을 연 후로 '사건 해결자' M&S가 '목격자/증인' 블랙과 동등한 정보를 가진 셈이 된 것이다. M&S는 네 명의 전직 FBI가 계시록에 나온 '네 명의 말 탄 자'가 되기 위해 자살했다는 걸 프랭크로부터 들어 알았다. 그렇다면 예언대로 그들이 살아난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x파일>에서 확실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경우는 흡혈귀 밖에 없었다. 그래서 '흡혈귀'인것이다. 곳곳에 동일인이 출몰하는 것은 '외계인'이란 설명이 주어졌다. 그럼 이 시체들은 뭔가? M&S에게 - 다시 말해 우리에게 - 제시된 유일한 가능성은 그들이 계시록의 '말탄 자들'이란 것이다. 즉 부활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들을 MOTW ep 괴물 없애듯이 해치우곤 끝인가? 외계인의 존재를 입증하기보다 힘든 창조의 비밀이 밝혀졌는데? 밀레니엄 사건을 구성하면 <밀레니엄>의 신학적 관점이 반드시 필요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딜레마를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은 프랭크 블랙을 '사건 해결자'로 부각시키고 M&S를 관찰자로 만드는 것이었다. 블랙이 M&S에게 아는 것을 다 말해 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M&S 모르게 밀레니엄 잔존 세력에 맞서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랬으면 전체 사실을 모르는 M&S는 사건을 일종의 돌연변이 - 좀비 - 케이스로 매듭지을 수 있고, 인간의 비뚤어진 종교적 갈망이란 주제는 블랙의 시점을 통해 우리에게 따로 전달될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 M&S를 만난 프랭크 블랙이 대화를 거부하며 수수께끼 같은 암시를 흘릴 땐 꼭 그렇게 전개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일은 결국 우리가 아는 대로 끝났고, 이야기는 M&S가 방금 부활의 기적을 목격하고도 딕 클락의 새해맞이 행사나 즐기는 생각 없는 사람들이거나 아니면 시체가 살아난 게 아예 부활이 아니거나(그럼 뭔지는 모르겠지만), 둘 중의 하나가 될 수밖에 없어졌다.

     

    두 세계가 불편하게 융합된 것은 사운드트랙에서도 느껴진다. 환생을 위한 시신 훼손이란 전형적 <밀레니엄> 씬이 연출되는데도 <x파일> 테마가 깔리는 teaser와 오프닝은 내게 시작부터 톤이 빗나간 느낌을 주었지만, 기왕 그랬으면 끝까지 그렇게 나가는 게 좋았다. <밀레니엄> 팬으로서는 아쉬웠겠지만 이것은 어차피 <x파일>이므로 <x파일> 무드로 사건을 끌어가는 것은 타당한 연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프랭크 블랙이 나타나자 생각난 듯 깔리는 <밀레니엄> 테마는 그의 등장 자체를 극히 도식적으로 만들었고, 겨우 적응되려던 그 무드를 다시 흔들어 놓았다. 프랭크 블랙이나 마크 존슨, 좀비가 나오면 <밀레니엄> 테마, M&S나 FBI가 나오면 <x파일> 테마라는 이런 도식적 사운드트랙 운용은 이후 내내 계속되며 Millennium의 분위기가 어느 쪽으로도 정돈되지 않게 했고 별개의 두 스토리가 산만하게 공존하는 느낌을 주었다.

     

    Millennium이 생기를 띠는 것은 따라서 두 공간이 따로 있을 때다. 프랭크 블랙이 두 번째로 찾아온 M&S에게 존슨의 프로파일을 얘기할 때 나오는 팬 시퀀스는 정말 아름답다. 존슨의 거처를 보여주는 살풍경한 이미지 흐름 위로 깔리는 나레이션은 로우키로 사용된 <밀레니엄> 테마 - 메인 테마 말고 - 와 함께 전형적인 <밀레니엄> 씬이었다. 토마스 라이트의 <밀레니엄> 연출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둘만 있을 때의 M&S도 물론 완벽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어필하는 것은 프랭크 블랙과 M&S의 대비다. '조단을 되찾기 위해서라면 보험 외판이든 어릿광대든 무슨 짓이든 하겠다'(I will sell insurance. I'll do whatever it takes. I'll get well and I'll jump through whatever hoops they want, but I will not mention the Millennium Group again)고 선언하는 프랭크 블랙은 비록 정신병원 신세지만 그를 사랑하는 딸과 그 딸을 지키겠다는 확실한 인생 목표가 있다. 그와 마주앉아 있는 M&S는 어떤가? 블랙에겐 단순하고 자연스런 일인 가정이나 사랑이 이들에겐 두려운 모험이다. 네크로맨서의 비정상성 - 다시 말해 범죄 성향 - 을 말해 주는 "제대로 된 인간관계 없음"(No fulfilling relationship)이 다름 아닌 M&S의 모습인 것이다.

     

    그것이 유독 가슴을 찌르는 것은 이들이 더이상 젊지 않기 때문이다. 잦은 안개비와 높은 습도가 천연 미스트 역할을 해준 뱅쿠버를 떠난 시즌 6 이후, M&S를 포착하는 카메라의 시선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빌 로는 LA의 강한 일광을 적극적으로 활용, 배우들의 스킨톤을 강조한 촬영으로 M&S의 미세한 주름과 음영을 남김 없이 읽어냈다(테렌스 맬릭이나 초기 프리드킨 영화, 최근작 <에린 브로코비치>를 보면 이런 촬영의 미학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시즌 6를 관통한 'aging' 테마와 맞물렸다 - M&S가 더이상 젊지 않음을 내용적, 시각적으로 환기시킨 것이다. 스컬리의 점이 갑자기 선명해진 것도 그 변화의 일환이었다. 물론 일반적 기준에선 여전히 터무니 없이 핸섬한 요원들이지만, 그들은 이제 누가 보기에도 청년이 아니다. 작은 일에도 흥분하던 드라마 초반의 두 젊은이는 여간해서 놀라거나 감동하지 않는 10년차(M&S 평균)의 베테랑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둘의 삶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여전히 혼자고, 자식도 없으며, 딱히 이룬 것도 내세울 만한 인간 관계도 없다.

     

    달려온 딸과 기쁘게 포옹하는 프랭크 블랙과 어색하게 떨어져 선 M&S의 대비는 그래서 가슴 아플만큼 선명했다. 똑같이 인생을 버린 프랭크 블랙에겐 조단과의 확실한 사랑이 있다. 그것이 그의 성취다. M&S에겐 아무 것도 없다 - 본인들도 어떤 관계인지 모르는 '서로'가 없다면.

     

    ...멀더가 생각나면 행동에 옮기는 사람인 게 이번처럼 반가웠던 적이 없다. 새로운 세기를 맞은 흥분에 서로를 얼싸안는 타임즈 광장의 군중들을 보던 그는 눈을 돌려 스컬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 시선에 스컬리가 돌아보자 주저없이 입을 포갠다 - 축하 키스가 아침 인사처럼 당연한 뉴 이어의 순간에도 M&S가 아무 것도 못 했다면, 7년의 연애...아니 파트너쉽에도 그만큼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라면 순수를 지나 처량해 보였을 것이다. 진짜 루저들로 보였을 것이다. 이 순간만은 키스가 그렇게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해피 뉴 이어 키스 덕에 그래도 둘에겐 서로가 있음이 확인되었다(우리에게 뿐 아니라 그들 자신에게). 그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물론 보잘 것 없고 한심하다. 그러나 모든 인생의 종착점이 같을 필요는 없다. 두 사람은 굼벵이고, 굼벵이에겐 나름의 사이클이 있는 것이다.

     

    밀레니엄 키스는 명실상부한 Millennium의 하이라이트였다. 씬 연출이 좋았을 뿐 아니라(이 얘긴 밑에서 한없이 하겠다) 새해맞이 행사에 깔린 '올드 랭 사인'과 <x파일> 테마가 아름답게 융합되며 암전했기 때문이다. 계속 분위기를 산만하게 하던 사운드트랙이 마침내 <x파일>로 정돈된 것이다.

     

    Millennium에 대한 내 반응은 나 자신도 의외였다. 나는 내가 M&S Kiss만 기대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밀레니엄 사건이 한낱 해프닝으로 귀결된 것은 내게 뜻밖의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1세들의 쇼 <밀레니엄>과 2세들의 쇼 <x파일>이 만난 데서 온 프랭크 블랙과 M&S의 대비는 좋았지만, 아무리 <x파일>이라 해도 <밀레니엄>이 다른 쇼의 들러리가 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x파일>로서도 이 크로스는 마이너스였다. 나는 화려한 실패작을 좋아하지만, <밀레니엄>과 섞인 덕에 Millennium은 <x파일> 식으로 실패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밀레니엄 키스는 완벽했고, M&S가 어떤 드라마틱한 상황이 아니라 평범한 새해맞이를 빌어 첫 키스에 성공한 게 유달리 어필했기 때문에 유감은 더 컸다. 나는 멋진 <밀레니엄> 에피소드를 기대했다 - 그리고 키스가 그것의 초라하지만 아름다운 마무리이길 바랬다. 키스를 즐기기 위해 계시록의 실현이란 플롯 자체를 잊어야 될 줄은 몰랐다.

     

     

    분위기 좀 띄웁시다!

     

     

    - 지상과 교신하기 위해 셀폰을 들고 묻힌 시체들!

     

    - 햇살 아래 불타는 듯한 첫 등장의 스컬리헤어! 6E II 마지막의 헬멧 헤어는 다행히 어디론가 사라지고, 2주째 풍성하고 아름다운 스컬리헤어다.

     

    - "Merry Christmas, by the way, Scully" : 그러고 보니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에피소드가 없었다(밀레니엄 에피가 크리스마스 에피를 대신했다). 그런데 멀더의 이 말엔 묘한 뉘앙스가 있다. 스컬리의 놀리는 듯한 대답 - 특히 "Thank you"라고 하는 말투 - 에도 묘한 뉘앙스가 있다. 대체 뭘까?

     

    현재 날짜는 12월 30일이다. 그런데 멀더가 성탄 인사를 했다는 것은 M&S가 크리스마스 이후 처음 만났다는 뜻이다. 적어도 5일 이상 떨어져 있었다는 얘기다. 같은 워싱턴에 있으면서 그랬을 리는 없고, 아마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났을 것이다(Christams Carol 때처럼, 십중팔구 스컬리가). 그리고 이제야 성탄 인사를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 사이 통화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 그러니까 멀더의 "Merry Christmas, by the way"는 실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인 것이다 (진짜 크리스마스 인사였다면 스컬리가 나타나자 마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스컬리가 "무슨 사건이예요(What do you have here)?"라 물은 다음에 이 말을 했다. "사건 얘기만 할 거예요?"라는 비난 - 아주 가벼운 비난 - 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스컬리의 반응이 의외다. 놀리는 듯한 "Thank you"에는 '그럴 거라고 했잖아요(I told you so)' 하는 듯한 가벼운 승리감이 느껴진다. 보통 스컬리는 멀더가 말도 안 되는 원망을 해도 자기 변호를 잘 못하는데(멀더처럼 재치 있는 말주변이 없기 때문), 여기선 아주 느긋한 모습인 게 칼자루가 스컬리 쪽에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니까 스컬리는 말없이 연락을 안 한 게 아니라 예를 들어 Chinga 때처럼 이번 크리스마스는 따로 보내자는 선언을 하고 간 것이다(지난 해 크리스마스에 멀더의 꼬드김에 넘어간 복수일지 모른다). 물론 멀더는 믿지 않았다. 자신만만했던 만큼 심지어 '그러자'고 했을 수도 있다(Chinga 때도 결국 연락했고, HtGSC 때도 결국 따라와 줬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정말 그렇게 한 것이다! 그는 충격을 받았고, 섭섭했다. 하지만 스컬리가 미리 말을 했고 자기도 동의했기 때문에 뭐라고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닷새나 지난 크리스마스 인사로 빙 둘러 원망을 한 것이다.

     

    고작 두 줄 대사로 웬 상상이냐고 하겠지만, 하여간 이게 도굴 현장에서 난데 없이 크리스마스 얘길 하는 두 사람의 분위기에 대한 내 추리다. 물론 가벼운 티격임이다. 멀더의 말투에도 스컬리의 태도에도 심각한 기미는 없다. 그저 '그래, 나 없이 크리스마스 보내니 좋았어요?' '재미만 좋던데' 하는 식의, 관계가 이미 안정된 사람들이 주고받는 조크다. 스컬리도 멀더와 놀아 주... 아니 일하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많은 사람이란 걸 한번쯤은 보여줄 필요가 있다(대신 조카들과 놀아준 건 아니겠지 ;-). 그런다고 크게 실망할 멀더도 아니다. 스컬리와의 관계는 마라톤이란 걸 그는 이미 알고 있다. 거리를 두다가도 스컬리는 다시 돌아온다. 여기의 "Merry Christmas, by the way"나 Revelations의 "나한텐 목욕 준비 안 해 주면서(You never draw MY bath)..." 같은 가벼운 원망들은 단지 마라톤이 아예 서 버리지 않도록 그가 꾸준히 자기 마음을 알리는 방법이다.

     

    - 고무장화!멀더 : 그래도 하나도 터프해 보이지 않는다^^

     

    - 멀더 : 사양 말고 반대해요 - 발굴된 FBI 요원의 시체가 무덤에서 걸어나와 성탄의 어둠 속에 사라지다.

    (스컬리가 비웃을 것 같으면 더욱 다채롭게 말하는 멀더. 스컬리가 웃은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시작은 좋았는데"라는 말로 그런 멀더의 허를 찌른 것, 귀여웠다)

     

    - <x파일>에서 엑스트라들은 대개 눈에 띄지 않거나 코믹한데, 사감 선생 같은 여자 FBI 요원은 정말 싫다. 틀어올린 머리에서 안경까지, 분장도 너무 과장되었는데 연기까지 어색하다. 남자 요원도 보기만 해도 음침하다. 둘이 파트너인가 보다.

     

    - 멀더가 '오로보스'의 의미를 설명하는 동안 인터컷된 스컬리 : '제길, 내 문신이 그런 뜻이야?!'

     

    - killer line : "자네들이 알아보게. 눈에 띄지 않게."

    (눈에 띄지 않게 수사해야 되는데 M&S를 보내다니, 푸핫ㅎㅎㅎ)

     

    - 하트웰 정신병원에 들어서자 마자 만난 'insane man'이 뭐라고 했길래 멀더가 돌아보고 웃었을까?

     

    - profiler vs profiler : 멀더가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꺼낸 풋볼 얘기에 말려들지 않고 자르듯이 "용건이 뭡니까?"라고 한 프랭크 블랙. 보통 참고인과 똑같이 다룰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멀더도 곧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사진을 펼쳐 보이며 아는 사람들이냐고 묻는데 '그렇다'고 하곤 고개를 돌려버리는 프랭크 블랙에는 그도 말이 막힌다. '모른다'고 하면 잘 생각해 보라든가 자세히 보라든가 하면 되는데, 안다고 하곤 그걸로 끝이니 말이 막힐 수밖에... 할 수 없이 스컬리가 나서서 정보가 필요하다고 까놓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상대의 입을 여는 데 실패해본 적 없는 멀더지만 프랭크 블랙에게는 통하지 않았다(히히... Nice job, Frank!)

     

    - 첫 다운에 18 야드???? 풋볼 얘기가 아니란 걸 알았어야지...

     

    - Scully's winning streak : 타는 듯한 붉은 머리와 환상적으로 어울린 오프닝의 군청색 터틀넥 스웨터에 이어 올리브그린의 사파리형 재킷도 멋지다! 사이즈도 작지 않다!! 스컬리, 예쁘다!!!! (당연한 사실에 이렇게 감사해야 되다니 :-( )

     

    - M&S와 다시 만난 프랭크 블랙 : 랜스 헨릭슨의 메마른 저음은 자체로 사운드 이펙트다. 수도승처럼 패인 눈과 굵고 깊은 주름, 건조한 피부를 극단적으로 강조한 클로즈업도 중세 회화처럼 아름답다. "그들은 내가 일밖에 모르고 종말론과 음모론에 빠진 부적격 에비라고 합니다. 문제는, 그들 말이 옳다는 거요" - Oh, I miss him...

     

    - 스컬리 : 게다가 21세기는 2001년부터라구요. (맞아!)

    멀더 : 산수 박사는 아무도 안 좋아해요, 스컬리.

    멀더는 유치원 or 초등학교 조크를 잘 쓴다 (Sleepless에서 크라이첵에게 한 "I appreciate the show and tell, but I work alone", Unnatural에서 스컬리에게 한 "Did you bring enough icecream to share with the rest of the class?", etc). M&S가 애들 같이 보이는 이유들 중 하나다.

     

    - 스컬리 : 어쨌든, 프랭크의 프로파일은 유용한 것 같아요.

    멀더 : (진지하게) 나두요.

    스컬리 : 그러니까 그대로 따르는 게 멀더가 말한 '네크로맨서'를 잡을 가장 확실한 방법 같아요. 시체공시소로 가야겠어요.

    멀더 : (진지하게) 동감이예요.

    스컬리 : 멀더는 뭘 하구요?

    멀더 : (진지하게) 프로파일을 따라야죠. 부보안관이 살해된 현장 근처 독신 가구를 수색해 보겠어요.

     

    '프랭크의 프로파일'이 범인이 공시소에 찾아올 가능성이 크다고 한 부분을 뜻하는 줄 알면서 시치미 떼고 '나두요'라고 하는 멀더. 딴 속셈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까는 범인 말고 시체를 찾아야 된다면서요' 하지 않고 '그러니까 내 말은 공시소로 가자는 뜻이예요'라고 다시한번 확인하는 스컬리. 그래도 모르는 척 '그래야겠죠' 하는 멀더. "we should"가 아니라 "you should"라고 하는 멀더에게서 마침내 따로 움직이겠다는 뜻인 줄 알고 '그럼 멀더는 뭘 할 거냐'고 묻는 스컬리. 끝까지 시치미 떼며 '프로파일을 따르겠다'고, 독신 가구를 수색하러 간다(=그 집에 있을 시체를 찾으러 간다)고 하는 멀더.  

     

    ...피차 대놓고 얘기하면 대화가 훨씬 단축될 걸 이렇게 이야기를 끌다니!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서로와 얘기하고 싶어 얘기하는 사람들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상대에 맞장구를 치는 척하는 것은 평소에 늘 의견이 다른 M&S 둘이 하는 작은 장난이다. '누가 먼저 웃나' 게임이랄까 (언제나 스컬리가 진다. 여기서도 끝까지 심각한 표정을 유지한 멀더와 달리 스컬리는 결국 미소를 짓고 만다 ;-). 단어를 바꿔가며 계속 '그럴 수 있죠' 한 E.B.E. 오프닝 씬 이후 계속 세련돼온 M&S 인터액션이다. 둘만의 조크/장난이 있다는 것 - 둘이 연인 같아 보이는 이유다.

     

    - 마크 존슨의 집을 찾은 멀더. 셀폰이 두절될 때부터 위험에 빠질 줄 알았다 :) 애들처럼 주머니에 소금을 집어넣다니, 수트가 울겠다(Dreamland II에선 해바라기씨도 넣어 다니더니). 아무튼 소금으로 존슨이 범인임을 확인하고 영장 없는 불법침입에 나서는 스푸키! 차로 들이받을 것인가, 총으로 체인을 박살낼 것인가, <x파일>의 만능 열쇠를 쓸 것인가? ...머리를 긁적인 그는 그냥 철망을 타고 넘는다.

     

    - 스컬리 : <밀레니엄>이 구색용으로 전락했다는 것 외에 Millennium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M&S 연출은 흠잡을 데 없지만, 스컬리 연출은 내게 거슬리는 곳이 많다.

     

    우선은 종교 문제. skeptic/believer 구도에 집착, 종교 문제만 나오면 스컬리를 자동적으로 believer로, 멀더를 자동적으로 skeptic 취급하던 도식적 이분법이 깨진 것은 좋았지만(범인의 동기를 이해하기 위해 멀더가 사건의 성서적 함의에 주목하고 스컬리가 "살아있을 때도 형체를 구분할 수 없게 성경을 왜곡하던 사람들이라구요"라고 말한다), 덕분에 스컬리가 실은 독실한 신앙인이라는 사실마저 외면당했다. "미친 소리 같겠지만... 밀레니엄 그룹이 정말 아마게돈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선과 악, 어느 쪽이 승리할까요?"?! 선과 악의 대결, 아니 그보다 여러 형태의 선의 대결은 <밀레니엄>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스릴의 원천이었다. 그것을 대사 몇 줄로 편하게 달성하려는 과정에서 스컬리의 신앙이 희생된 것이다. 아마게돈을 가져오는 게 무엇인지, 선과 악 중 어느 쪽이 승리하는지 - 그걸 모르는 카톨릭은 없다. 스컬리가 사이비 신자가 아닌 다음에야 이런 터무니 없는 질문은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숨막히는 클로즈업, 긴장된 스코어를 써도 이런 대사론 <밀레니엄>의 서스펜스를 흉내낼 수 없다. 시체들의 환생에 대한 스컬리의 반응이 다뤄지지 않은 것 - 아니, 다뤄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마지막 씬에서 모든 게 해결이라는 듯 미소 띤 얼굴로 '존슨은 체포 후 자살 감호에 들어갔다'고 전하는 - 도 같은 맥락이었다.

     

    후반 내내 스컬리를 충격에 사로잡힌 모습으로 그렸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스컬리가 좀비의 공격을 받은 후 장면 전환되어 스키너가 나타났을 때, 넋놓고 앉아 있는 모습 정도만 짤막하게 보여줬어도 좋았다. 그랬으면 그녀가 우리가 모르는 데서, 즉 오프스크린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있다는 암시가 전달되었을 것이다(바로 <x파일>의 장기 아닌가!). 그런데 그 순간마저도 '스컬리, 어떻게 됐나?' 하는 싸구려 gimmick에 내주고 말았다. 무거운 표정으로 들어와 시체 덮개를 젖히는 - 설마 스컬리는 아니겠지 하는 긴장감을 조성하며 - 스키너만 보여준 것이다.

     

    현명하진 못했지만 <밀레니엄> 분위기를 내기 위한 선택이었음을 알면서도 '카톨릭 스컬리' 연출에 이렇게 화가 나는 것은 다른 연출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거슬리는 것은 스컬리의 'feminine side' 강조다. 프랭크가 기쁘게 조단의 전화를 받으러 갈 때, 마지막에 조단과 프랭크가 포옹할 때... 우리는 계속 스컬리의 반응 쇼트를 보게 된다.

     

    빈스 길리건-프랭크 스포트니츠-존 쉬번 트로이카에 '셋이 만나면 쥐약'이란 오명을 안겨 준 Christmas Carol/Emily, Dreamland I/II 이후로 스컬리는 웬지 자식과 가정에 집착하는 여자로 그려졌다. 여자는 일정한 나이가 되면 일에서 가정(인간관계 포함)으로 당연히 우선순위를 바꾸게 되는 것처럼... 트로이카에서 존 쉬번이 빠지긴 했지만, Millennium의 스컬리 연출도 비슷한 경향을 보여준다. 거기서 느껴지는 스컬리의 '페미닌화'가 절정에 달한 것은 위에 말한 스키너와의 씬이다. 시체를 확인한 스키너는 스컬리가 나타나자 팔을 뻗어 그녀의 목에 난 상처를 살핀다 : 스키너가 M&S에게 개인적 의미가 있는 상관이란 건 안다. 그래도 상관은 상관이다. 아버지나 애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팔을 뻗어 만지다니? 상관이, 부하 요원을? 누가 보면 둘이 상하 관계일 뿐 아니라 사적인 관계라 착각할 것이다. 멀더도 이런 행동은 많이 했다. 그러나 이렇게 당연하게는 하지 못했다(시즌 1에서 그가 갑자기 손을 뻗거나 팔을 두르면 스컬리는 예외 없이 긴장했다). 결정적으로 그는 스컬리와 동급자다 - 상관이 아닌 것이다. 권력 관계가 걸린 상관이 이런다는 것은, 더우기 그것을 스컬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sexism의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거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공적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이 동료애 - 상관애? - 로 미화되었기 때문이다.

     

    스키너가 염려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심지어 스키너가 얼떨결에 팔을 뻗는 것까지도 그럴 수 있다고 칠 수 있다. 그는 M&S를 단지 부하 이상으로 아끼고 있고, 그래서 스컬리를 살리려고 - 나는 언제나 '멀더를 살리려고'라 생각했지만 - 직접 CSM과 거래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얼떨결에 했다고 상대에게 폐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호의였다 해도 실례는 실례다. 그래서 규범이 필요한 것이다 - 스컬리가 조금이라도 놀라는 기색을 보이거나 주춤했다면, 하다못해 불편한 듯 뻣뻣이 서 있기만 했다면 스키너는 순간적으로 자기 행동을 자각하고 팔을 거뒀을 것이다(no offense taken). 그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작진은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같은 스키너가 염려해 주는데 뻣뻣하게 거절하는 것은 아름다운 스컬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컬리 머리가 예쁘다는 말 했던가? 그래도 헤어스타일은 제대로 해놓았다. 가끔은 작가들이 M&S를 쓰는 데만 골몰하다 M과 S를 따로 쓰는 감각은 잃어버린 게 아닌가 의문스러워진다.

     

     

    - 다시 좋았던 부분으로 : 프랭크 블랙에 비하면 청년이라 할 M&S가 인간관계에 서툰 것이 게 유난히 가슴아픈 까닭을 생각해 보았다. 전에는 프랭크 블랙처럼 '가족이 전부'라 선언하는 가장이 나와도 그들이 전혀 초라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프랭크 블랙을 빌어 <밀레니엄>적 세계관이 침투해 들어와서일 것이다.

     

    <x파일>은 고독한 일중독자들의 드라마다. M&S는 말할 것도 없고 스키너, CSM까지 다 그렇다. 남편을 여전히 사랑하는 것 같던 샤론 스키너가 이혼을 결심한 것도 속을 내보이지 않는 스키너의 폐쇄적 성격 때문이었다. 말 한 마디로 국방부까지 움직일 수 있는 CSM도 개인 생활이라곤 술과 총을 끼고 혼자 흑백 전쟁영화를 보는 게 전부다. 오직 일을 통해서만 살고 소통하는 파편화된 개인들이다. 거기서 '기혼자'는 모두 기만자나 음모가다 (컨소시엄, Arcadia의 섬뜩한 집단이기주의, 파탄 직전의 플래처 가정(Dreamland), 비리를 정당화하는 가족주의 이념(Blood, Our Town), etc). M&S가 초라하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전통적 의미의 행복이나 안정이 기만에 불과한 꼬인 세계기 때문이다.

     

    <밀레니엄>은 다르다. 드물긴 하지만, 거기서 전통적 의미의 행복이나 안정은 사기가 아니다. 프랭크 블랙이나 피터 와츠, The Elder는 폐쇄적일지 몰라도 기만적이진 않으며, 특히 프랭크 블랙의 경우는 악과 싸우는 힘의 원천이 그의 가족이었다. 오히려 밀레니엄 그룹이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그와 가족이 멀어지게 획책했다. 가족의 유대를 위협하는 선과 악, 양쪽의 압력에 맞서 힘든 싸움을 계속하는 것이 프랭크의 미덕이자 투쟁이었다. 그리고 캐서린 블랙이 죽자 그와 조단의 사랑은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사랑으로 남았다.

     

    '조단을 위해서는 뭐든지 하겠다'는 프랭크 블랙의 선언은 그래서 M&S 월드에 파문을 일으켰다. M&S가 밀레니엄 키스를 나누기 위해 프랭크와 조단이 속히 자리를 떠야 했던 것도 그래서다. 세상과 악에 대한 대안이 다른 두 드라마가 M&S의 불안정한 사랑을 똑같이 찬양할 순 없기 때문이다.

     

     

    - 그런 의미에서 밀레니엄 키스 1, happy part : 예전에 아직 관계가 어색한 사람과 파티에 간 적이 있다. 친한 사이들이라 모두가 동반한 파트너와 편하게 껴안고 입 맞추며 즐기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아직 그런 행동까지 하는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 더 중요한 것은, 그러고 싶은지 확실치 않은 사이였기 때문에 - 거북하고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서로 눈치를 살피는 사이 어색함은 더 커졌고, 어색함은 피곤함을 낳았으며, 피곤해지자 같이 있는 것이 싫어졌다. 점잖은 모임에서는 괜찮던 관계가 모두가 즐기고 환호하는 '진짜 커플들' 사이에서는 이질감만 드러내고 만 것이다.

     

    M&S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모두가 떠들썩한 가운데 둘만 어색한 것은 절대로 유쾌한 기분일 수 없다. 멀더가 스컬리에게 그런 씁쓸함을 맛보게 하지 않아 다행이다! 프랭크와 조단이 나가자 이젠 뭘 할지 모르겠다는 듯 둘이 어정쩡하게 TV 쪽으로 돌아설 땐 정말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컬리에게 호시탐탐 뜻있는 조크를 던지면서 막상 이런 때는 아무 행동도 않는 멀더에게 순간적으로 화가 났을 정도다. 행복하게 입 맞추는 고교 동창들 사이에서 멋없이 그냥 서 있어도 둘 사이가 전혀 어색하지 않던 Rain King 때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은 사람들이 아무하고나 얼싸안는 New Year's Eve고, 게다가 주위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 지금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상대가 싫어 안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멀더는 환호하는 군중들을 보다 문득 눈을 돌려 스컬리를 본다. 곁에 그녀가 있다는 걸 깨달은 듯... 그리고 그녀의 옆모습을 한동안 응시한다. 대륙을 반 바퀴 돌아 알래스카로 자신을 구하러 와줬으며 영문도 모르는 뇌수술에 죽어가던 자신을 찾아낸 여자의 얼굴이다. 그는 기다렸지만, 망설이진 않았다. 스컬리가 고개를 돌리자 바로 다가가 입을 맞췄다 - 그리고 약 8초간 그대로 있었다.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은 멀더의 안정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예상하진 못했지만 스컬리도 좋았던 것 같다. 조용하지만 확실한 미소가 그 증거다. 반응을 살피며 뒤늦게 긴장한 멀더도 겨우 안심한다.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Awwww....

     

    - 밀레니엄 키스 2, poignant part : 그러나 미소는 오래 가지 않았다. 시선을 풀고 고개를 돌린 스컬리의 얼굴에서 미소는 천천히 사라진다. 뭔가가 그녀의 행복을 흔들어 놓았다. 가슴아픈 것은 그와 함께 멀더에게서도 미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갑자기 둘은 슬퍼 보였다.

     

    언제부턴가 생각 없이 웃는 스컬리의 모습은 사라졌다. 사실 웃을 일이 없다. 산 채로 끌려가 "medical rape"를 당하고, 언니는 살해당하고, 생식능력을 빼앗기고, 살아나긴 했지만 아직도 암을 안고 있는 그가 무슨 웃을 일이 있겠는가. 제작진 - GA? - 은 이 점을 잊지 않았다. 전 세계가 축하하는 새 시대도, 그 순간을 함께 한 연인도 그 모든 것을 지우지는 못한다 - 해가 지듯 미소가 사라지는 스컬리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키스도 스컬리에겐 불과 몇 초의 행복일 수밖에 없음을 말해 주었다. 멀더도 그것을 알았다. 애초에 그가 스컬리와의 마라톤을 각오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스컬리의 인생을 감쌀 수 없다는 걸 안다. 자기가 있다고 스컬리의 문제가 사라지거나 슬픔이 줄어들지는 않는다. 스컬리에게 얼마의 시간이 필요하건 그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사랑할 때 상대의 삶이 자기 사랑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힘든 일이지만 그는 인정했고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첫 키스에 스컬리가 좀더 흥분된 반응이기를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 순간만은 자신이 함께 있다는 사실 하나로 충분하기를 그는 바랬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누구보다 제작진이 잘 알고 ;-), 마음 깊숙이는 멀더도 안다. 물론 키스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상황이 되풀이돼도 그는 똑같이 할 것이다. 단지 스컬리에게 자신이 전부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할 때마다 안타까울 뿐이다.

     

    키스 후의 이 작은 그림자는 앞서의 불쾌한 스컬리 연출을 상당히 보상해 주었다. 키스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사랑이 전부인 여자로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GA의 연기였는지 연출인지 모르겠지만 미소 자체도 상당히 슬퍼 보여 깜짝 놀랐다. 멀더의 표정이 흐려지는 것도 당연하다. 스컬리가 "아이구 골치야(Oh, brother...)" 하고 돌아서도 '저래도 다시 올 거야' 하듯 빙그레 웃던 Triangle 때와는 다르다. 사랑으로 충분치 않음을 정말로 실감하는 듯하다(키스를 한 것이 스컬리가 아닌 멀더란 걸 생각하면 실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스컬리가 침울한 반응을 보인 것이 사랑이 없어서는 아니라는 걸 아는 한 그대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반은 자위하듯, 반은 스컬리를 위로하듯 팔을 두르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FTF, Triangle로 우리에게 그렇게 예행 연습을 시키더니 1013, 결국 이런 식이다. 진짜 키스는 절대로 핑크빛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플롯은 좀비들만 해치우면 만사 해결이게 만들면서 M&S에겐 만병통치 키스 한번 주지 않는다. 그래서 감동했지만, 정말로 가슴 아팠다 (지금도 아프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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