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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p. 1-2
    시즌별 리뷰/시즌 7 2024. 6. 19. 00:59

    The Sixth Extinction / The Sixth Extinctin II: Amor Fati

    각본  크리스 카터, 프랭크 스포트니츠(The Sixth Extinction)/데이빗 듀코브니 &크리스 카터(Amor Fati)

    감독  킴 매너스(The Sixth Extinction), 마이클 왓킨스(Amor Fati)

     

     

    마감 때의 내 방도 이렇게 엉망은 아니었다. 무능한 작가가 끄적이다 만 소설도 이렇게 어설프진 않을 것이다. 시청률 지상주의로 치달은 '90년대 이후의 미국 방송계가 어떻게 이런 넌센스를 감당할 수 있었는지가이 2부작 - 시즌 6 피날레 Biogenesis는 제외하고 - 을 지탱하는 유일한 미스테리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관객의 넋을 마비시킨다.

     

    7년간 <x파일>은 완벽에 가까운 완성도(production value)와 B급에도 미달하는 기본이란 기이한 족적을 남겨 왔다. 그것은 촬영, 음악, 연기, 연출 등 기술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텔레비전 시리즈의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을 과시하면서 이야기 논리(plot logic)나 연속성(continuity) 등 드라마의 기본에 있어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부실을 범해 왔다. 잘 되었을 때 <x파일>은 밤잠을 설칠 만큼 감동적이고, 망쳤을 땐 아마추어 만화보다 한심하다. 예술에 가까운 성과와 광대 같은 실패 - 그 극명한 대비는 심해와도 같은 이 갭을 '스타일'로 정착시킬 정도였다.

     

    6E I/II도 내러티브 면에서는 완전한 카오스다. 6E I은 Biogenesis가 제기한 문제들을 무시하고, 6E II는 6E I이 제기한 문제들을 무시한다. 그러나 시리즈의 지병인 이 기억상실증도 소위 3부작이라는 세 에피소드의 제각각인 톤에 비하면 약과다.

     

    6E I/II는 <x파일> 에피소드 중 내가 가장 '스포일'된 상태에서 본 에피소드다. 미국에서 첫 방송되기 전 여러 매체에 떠돈 스포일러들, 대본, 뉴스그룹 토론까지 온갖 정보가 머릿속에 들어 있었고, 그 처리 결과는 솔직히 비관적이었다. 플롯은 취약한데 스케일만 너무 컸던 데다 6E II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구조는 어떤 식으로도 성공하기 어려운 무리수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정적 선입관에도 불구하고 나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게 감동했다. 스포일러에서 본 단점들이 실제로는 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 그대로 있었을 뿐 아니라 어떤 의미에선 생각보다 더 심했다 (특히 Biogenesis에서부터 거슬리던 기묘한 톤의 변화는 더 극대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며 문득 한 가지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카오스에서 질서를 찾아내려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이다. 6E I/II는 질서라는 관념 (예를 들어 시점의 일관성, 플롯의 방향성) 하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논리를 세워보려다 실패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일부러 논리를 전복한 것도 아니다. 내 느낌으로는 그 중간 같다. 6E I/II는 오직 한 가지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 비틀거림을 감수했다. (제작진은 뭔가를 '감수'하고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은 것 같지만)

     

    그것은 바로 무상함, 인간적 한계의 수용이다. 비주얼과 톤이 제각각인 6E I/II를 관통하는 한 가지 이미지는 파도와 모래다. 모래사장을 씻는 파도는 두 에피소드 내내 전환 쇼트로 사용되며 우리의 망막에 아로새겨진다.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는 파도 - 바로 덧없음에 대한 보편적 이미지다.

     

    내용적으로는 '최면성'이 이 주제를 끌어 간다. Biogenesis/6EI/II 3부작은 '최면의 3단계' (Three Degrees of Hypnosis)란 부제로 불려도 좋을 것이다. 세 에피소드의 각기 다른 톤과 무드도 이렇게 하면 설명된다. 1단계는 Biogenesis, 멀더가 처음 최면에 걸리는 에피소드다. 그 주문이 시작된 것은 갑작스런 톤의 변화로 나를 심란하게 한 엘리베이터 씬이다. 그것은 무의식을 불러 일으켜 오랜 욕망의 뚜껑을 여는 주문이었다. 멀더는 갑자기 '소리들'을 듣기 시작했고, 혼란된 가운데서 이미 오래 전 Redux II 이후 묻어버린 사만다 일을 생각해 냈다. 멀더가 이겼는데 뭘 더 바라느냐는 스컬리의 어이 없는 질문이나 이 난데 없는 질문에 동생이라 대답하는 멀더의 거의 몽환적인 페이소스는 모두 최면의 첫 징후다 (밝혀지지 않은 정부의 음모가 산적해 있는데 스컬리가 모든 게 다 해결되었다고 말할 리도 없거니와 멀더는 x파일이 동생을 찾기 위한 일이라고는 한번도 인정한 적 없다. 누가 그렇게 비난하면 화를 내던 그가 그것을 입밖에 내었다는 것은 이것이 방어 기제가 모두 떨어져 나간 일종의 최면 상태임을 암시한다).

     

    [ 여기서 '최면'이니 '주문' 같은 말이 황당하게 들린다면 이 장면을 텍스트 그대로, 즉 탁본으로 멀더 안의 오일리언이 처음 활동을 개시한 시점으로 이해해도 좋다. 멀더의 상태는 어찌 됐건 그 외계 물질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로 인한 극심한 두통도 사실이므로 갑자기 사만다 문제에 사로잡힌 것도 컨디션 저하에 따른 사이드이펙트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병이 들거나 아플 때 우리가 갑자기 평소에 잊고 살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그러나 내가 주문이나 마법 같은 서브텍스트에 따라 Biogenesis/6E I/II를 읽어나가는 것은 플롯의 논리를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논리에 꿰어지지 않는 부분 - 연출상의 오류로 보이건만 삭제되지 않고 남은, 마지막의 눈물 방울 씬처럼 너무나 터무니 없어 동화적이기까지 한 돌출 장면들 - 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

     

    2단계는 6E I. 멀더에게 걸린 주문은 엘리베이터 씬 이후 계속 잠복해 있다 (Biogenesis의 상대적 현실성은 거기서 비롯된다) 뇌의 활동과다로 체력이 소진되자 다시 작동에 들어간다. 크리치고우를 통해 잠시 자아 (=의식)를 회복, 현실을 제어하려던 노력은 페니토인 과다로 인한 쇼크를 끝으로 좌절되고 그는 주위를 인식하되 아무 것도 전달할 수 없는 가사 최면 상태에 들어간다. 그러나 외부의 자극을 의식 수준에서 처리 가능했던 6E I까진 현실성이 조금 남아 있다. 6E I의 기묘한 이중 시점 (전지적/드라마적 시점 vs 멀더의 시점)은 그래서다. 멀더는 아직 세상을 볼 수 있지만, 세상은 멀더를 보지 못한다. 멀더가 고개를 돌리고 눈을 깜박일 수 있는데 사람들이 "He can't even communicate"라고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리고 6E II에 오면 다시 시점은 통일되고 완전 최면 상태, 비현실의 세계가 펼쳐진다. CSM의 주사를 시작으로 완전히 주술의 세계에 빠져든 멀더는 수동적 상태에서 CSM이 방출하는 온갖 자극들을 처리해가기 시작한다. 여기서도 '주술'이란 말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마취' 또는 '의식 불명'이란 말을 대입할 수 있다. 멀더는 Biogenesis에서부터 온갖 약을 주사받은 상태이므로 그 쪽이 논리적으로는 더 타당한 표현일지 모른다. 어느 쪽이든 6E II가 주사로 멀더를 마취시켜 국방부 수술실로 옮겨 가는 동안 CSM이 관장한, 혹은 이동 과정에서 CSM이 한 말이나 CSM이 파울리와 나눈 대화 등을 받아들여 멀더가 꾼 꿈이라는 사실은 변함 없다 (담배, 수갑 등 물적인 상징이 강하게 대두되는 데서 알 수 있다). 그러나 거기 담긴 강한 '매혹'은 동화적 주술성을 강조한다. CSM의 말처럼 멀더가 "creature comfort"에 유혹당할 사람이라곤 생각지 않지만, 사만다만은 커다란 매혹임에 틀림 없다. CSM의 옆 집에서 파울리와 안락한 삶을 사는 것이 바늘 끝만큼이라도 유혹적이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사만다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Redux 이후 그는 CSM을 아버지, 혹은 그에 준하는 존재로 받아들이지 않고는 사만다를 되찾을 수 없음을 암시적으로 알고 있다). 이 기묘한 꿈은 사만다를 시작으로 그것과 관련된 온갖 유혹들을 내보이며 멀더의 자아를 해제, "그를 잠들게 하려 한다 (He's lulled you into sleep)".

     

    그러나 CSM이 내놓는 온갖 유혹의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멀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CSM이 제공하는 자극은 그의 의도대로가 아니라 미약하나마 멀더 자신의 것으로 처리된다. DeepThroat와 재회했을 때의 넘치는 환희는 DeepThroat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면제받는 것이 그에게 얼마나 큰 해방인지 말해 준다 (시즌 2 초반의 블루스가 x파일을 빼앗겨서라기보다 DeepThroat의 죽음 때문이었다는 내 가설이 입증되는 순간!) 반면 호사스런 집과 씩씩한 자식들에 대한 상대적 무감동은 그것이 인생에서 멀더가 그리 중시하는 게 아님을 보여준다. 심지어 사만다와의 상봉조차 DeepThroat를 다시 만났을 때만큼 큰 여운을 남기지 않는다. 사라져 가는 의식의 한 켠에서나마 멀더는 CSM의 아들이 되어 사만다를 되찾는 것, 스컬리 없는 사만다는 옳지 않음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멀더가 사라지지 않았음을 말해 주는 가장 큰 증거는 바로 해변의 소년이다. 체내에 주사된 약물과 외부 자극이 뒤엉킨 상태에서도 그의 의식은 끊임 없이 이 소년을 찾아간다. 유일하게 멀더 자신이 꾸는 꿈인 이 시퀀스의 페이소스는 그러나 그가 멀더의 자식이 아니라는 데 있다 : 소년에겐 첫 걸음을 뗄 때 손을 잡아주는 부모가 있다. 멀더의 첫 번째 역할은 단지 그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 뿐이다. 그러나 그는 유심히 바라본다. 그가 무사히 걸음을 떼는지, 넘어지지 않고 안전하게 아버지의 손을 잡는지... 그리고 소년이 혼자 모래 우주선을 만들다 파도에 그것을 잃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자 마침내 그에게 다가간다.

     

    이것은 콜버그나 에릭슨이 말한 인간성 발달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더할 수 없는 아날로지다. 인간이 겪는 마지막 위기는 생산성 위기 (generativity crisis), 다시 말해 '뭔가를 남기고 싶은 욕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결혼해 자식을 낳는 것으로 해소한다 (이 '대부분'이란 것 때문에 이것이 인간성의 가장 성숙한 단계로 오인되는 것이다. 파울리가 "It's all childish, Mulder. ...You won't know the true joy of responsibility until you plant your feet in the world and become a father"라고 한 것처럼). 그러나 가장 성숙한 단계는 사실 자아와 세계를 분리하는 것, 즉 자신과 상관 없는 익명의 다수 (=남의 자식, 남의 나라, 후손)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

     

    멀더는 생물학적으로는 소년의 부모가 아닐지 모른다. 그에게 걸음을 가르쳐준 것은 멀더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atxfa의 롤리고가 말했듯이 소년은 멀더의 아들이다 - 멀더 아닌 다른 사람은 누구도 그와 우주선을 지어주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파도에 허물어진 모래 우주선에 눈물 흘리는 소년의 아픔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멀더만이 자신에게 모래를 집어던지며 "It's your spaceship. You were supposed to help me!"라고 하는 소년의 비난에 귀기울였기 때문에.

     

    누군지도 모르는, 혼자 모래성을 쌓고 있는 소년을 걱정하고 계속 찾아가는 것은 약물과 자극으로 육체에 대한 자주권을 완전히 상실한 가운데서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우리의 멀더다. CSM도, 어떤 주술도 앗아갈 수 없는 멀더의 정수 - 그는 깊은 최면의 와중에서도 이 소년의 의미를 알아내려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다.  

     

    스컬리의 여정은 동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Folie a Deux'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 여정은 멀더가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듦에 따라 약물이나 외부적 유혹/자극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녀마저 같은 주술의 세계로 잡아 끈다. 보는 사람에게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우주선의 문자처럼 (알버트 호스틴은 창세기를, 엔게베는 코란을, 스컬리는 인간 지놈을 읽어 냈다), 그것은 모든 것이 보는 사람의 욕구에 따라 형상화되는 - in the 'Eye of Beholder' - 동화의 세계다. 따라서 스컬리가 멀더를 구할 수 있는 길은 논리적 해답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우주선의 문자를 해독하려 한 것은 그런 시도다), 실제로 적에게 검을 꽂기보다 가슴 속에서 용기를 찾아냄으로써 악을 물리치는 동화의 주인공들처럼, 멀더의 위기를 함께 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Have you looked for him here?" "Are you asking me to pray?"). 왜냐 하면 이것은 기이한 일들이 인과적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기이한 일들 자체로써, 오직 히어로가 지금껏 알던 좌표가 모두 사라진 가운데서도 스스로 좌표를 세울 수 있는가 - 삶의 "touchstone"을 찾아낼 수 있는가 - 를 시험하기 위해 존재하고 발생하는 내면의 세계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지막에 멀더를 찾아낸 스컬리가 왜 들것이나 카트를 끌고 와 그를 옮기려 하지 않고 스스로 일어나라고 호소하는지, 뇌수술로 "기적의 유전자"를 빼앗긴 채 내버려진 멀더가 어떻게 스컬리의 포옹 한 번에 소생하는지 따져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And you believed him. Traitor. Deserter. Coward!"란 스컬리의 질책에 CSM의 꿈을 박차고 나올 힘을 찾은 멀더처럼, 스컬리는 믿었던 세계 (=과학이라는 질서)가 모두 산산조각난 가운데서도 멀더라는 방향타를 따라 생의 좌표 - 기도 - 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눈물 방울마저 함께 흘리는 (의도적 연출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비길 데 없이 아름다운), '서로'라는 이정표를 찾아낸 그들은 주술을 깨고 현실로 돌아오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FtF의 Near-Kiss 씬을 연상시키는 마지막 복도 씬은 <x파일>에서 기대할 수 없던, 기습적일 만큼 조용하고 안정된 정서적 종결(emotinal closure) - 내러티브적 종결은 아니지만 - 을 보여준다. "your friend"라고 하긴 했지만 실은 멀더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확신할 수 없는 다이아나 파울리의 죽음을 전하며 일종의 사과를 하는 스컬리에게 "Even when the world was falling apart, you were my constant... my touchstone"라고 하는 멀더의 목소리는 FtF에서보다 훨씬 확고하다. 이마에 긴 키스를 남긴 뒤 "다음에요" 하듯 그의 입술을 어루만지고 간 스컬리 뒤를 쫓아가지 않을 만큼 스컬리의 마음도 확신한다. 대신 그는 눈을 감고 다시 해변으로 돌아간다. 스컬리를 사랑하는 한 자신에게 생물학적 번식의 기회가 없음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소년과 모래 우주선에 마지막 장식을 함께 하는 멀더의 행복한 모습은 그가 그런 인생에 만족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생산성은 뭔가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Be fruitful,and multiply, and replenish the earth, and subdue it: Biogenesis)" 하진 못해도, 우주선 (= 물증 = 성과 = 업적)이 사라진 자리에 곧 씻겨 없어질 모래 우주선을 쌓고 소년 (= 약자/낙오자/패배자 = 익명의 타인)의 욕구를 보살핌으로써 업적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인간성의 약한 수호자가 되는 것, 그것이 그가 후세에 기여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극히 감동적인 것은 6E I/II가 멀더가 희생자(victim)임을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햄릿도, 그리스도도, 랄프 네이더도 아니다". 6E I/II에 예상 밖의 감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리스도/폭스 멀더의 마지막 유혹' 구도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마지막의 수술대는 틀림 없는 십자가다 : 가시관을 연상시키는 모니터 장치들이 박힌 금속 관에서 양 팔을 벌려 묶은 자세, 국소 부위만 가린 하얀 시트까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 그 자체다. 그러나 스스로 유혹을 헤치고 나온 그리스도와 달리 멀더는 스키너나 크리치고, 스컬리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진짜 희생자기 때문이다. 약물과 정체 불명의 외계 물질로 정신과 육체에 대한 주권을 침탈당하고 실험쥐로 전락한 명실상부한 피해자, 희생자인 것이다. 육체적 고통을 당해도 정신적 주체성은 잃지 않는, 다시 말해 악의 손아귀에 빠지는 것이 정신력으로 시련을 뚫어 내는 영웅적 시험이 되는 헐리우드 컨벤션과 달리 주인공을 이렇듯 진짜 희생자로 만드는 것은 실버와 TV 스크린을 통틀어 전례 없는 전략이다. 그것은 제도화된 악에 대한 두 무력한 희생자 (One Breath, FtF에서 스컬리도 멀더처럼 육체를 violate 당했다)의 싸움을 더 미약하고, 그런만큼 더 감동적으로 만든다.

     

    부인할 수 없는 '십자가의 그리스도' 비주얼은 오히려 CSM의 범죄적 과대망상을 말해 주는 장치다. 이 장면이 나올 때마다 멀더를 바라보는 CSM의 대사가 동반하는 것도 이것이 CSM의 관점임을 강조한다. CSM이 자신을 인류를 위해 아내 (카산드라 스펜더)와 자식 (멀더)까지 희생하는 구세주적 인물로 착각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여기서 섬뜩한 것은 그가 멀더를 거리낌 없이 자기 아들로 간주하는 것이다. "But a father demands more than mere survival. ...a father demands worldly adulation, success, heroism"이란 말로 알 수 있듯, 그는 성에 차지 않던 스펜더는 미련 없이 제거하고 자신이 던지는 미끼에 따라 긴 세월 충실하게 꼭둑각시 노릇을 해온 - 불행히도 이는 어느 정도 사실이다 - 멀더를 자신의 적자로 받아들이고 있다 ("I'm so proud of this man - the depth of his capacity for suffering"). 그러면서도 그런 '아들'을 서슴 없이 실험에 희생시키는 데 그의 진정한 악마성이 있다. 범죄자라 해도 보통 가족이나 아는 사람은 그 대상에서 제외시키는데 ('익명성'이 그들이 저지르는 짓을 '대의'로 포장할 수 있게 하는 심리적 완충 장치다), 그런 마지막 감상조차 필요로 하지 않는 CSM은 목적을 위해선 누구든, 무엇이든 희생시킬 수 있는 진정한 마키아벨리적 악당이다 ("I hope you see the poetry in this, Diana").

     

    어쩌면 역사를 바꿔놓는 것은 그런 사람들일지 모른다. CSM의 말처럼 "forcing the next step in evolution to save man. ...doing the God's work"를 할 수 있는 사람들 - 한번 전쟁이 날 때마다 의학은 획기적 발전을 하지 않는가. 그러나 멀더와 스컬리는 어떤 대의를 위해서도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도 희생시키려 하지 않는다. FtF에서 멀더가 스컬리를 구하기 위해, 6E I/II에서 스컬리가 멀더를 구하기 위해 외계인의 존재를 알아 내고 다가올 바이러스 대멸종을 이길 유전자 암호를 밝혀 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서로를 구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운좋은 부산물일 뿐 그들 스스로 찾아나선 업적이 아니다.

     

    아무 것도 남길 수 없는, 남지 않는 삶을 수용한 라스트 씬의 센세이셔널한 감동은 거기서 나왔다. <x파일>이 국외자/낙오자/아웃사이더의 삶에 대한 찬가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이렇게 확실한 선언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은 와이에스처럼 황폐하고 에드워드 하퍼처럼 적막한 선언이지만, 그 감동은 500여 페이지의 혼란을 읽어나간 끝에 갑자기 맞이하게 되는 '문 팰리스'(폴 오스터)의 감동처럼 마술적이다. 6E I/II는 어떤 식으로도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에피소드다 : 외면할 수 없는 결점은 너무 큰 반면 카타르시스는 '아이 오브 비홀더'다. 그러나 나는 이 3부작을 어떤 걸작과도 바꾸지 않겠다.

     

     

    분위기 좀 깹시다!

     

     

    - 사람이 아프다는데 할 말은 아니지만, 병원에 있을 때 멀더 헤어 진짜 예쁘다...(특히 6E I에서 스키너가 처음 면회갔을 때) 메이크업도 굉장하다! 스키너 뿐 아니라 나도 멀더에게 바깥 공기 좀 쐬어 줘야 하지 않나 걱정했다. 병원에 오래 있어 안색이 죽은 환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딱히 다친 데도 없는 이런 분장이 훨씬 하기 힘들텐데...

     

    - 같은 장면에서, "Let go, Mulder. I don't wanna hurt you" : 코피가 나면서도 부하가 다칠까봐 전력을 다하지 않는 스키너, 너무 멋있다! (권투가 취미인 부국장을 멀더가 무슨 수로 당한다고 ;-)

     

    - 하지만 환자복을 찢어 (예쁘게도 찢었지) 도와달라는 말을 써놓고 스컬리를 기다렸을 멀더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 그래서 스키너가 말을 할 때 내내 잠잠했던 것 같다. 스컬리가 아닌 부국장이 왔으니 이걸 어떻게 전하나 하고...

     

    - 아미나 엔게베와 스컬리의 팀 플레이, 멋있었는데 더이상 안 나와 유감이다. (스컬리가 아프리카까지 푸쉬업 브라를 가져갔을 줄이야...)

     

    - 어둠 속에 출렁이는 피바다! 정말 놀라운 비주얼이었다. 6E II에서 유혹의 시나리오가 시작되는 큐로 사용된, 모니터 빛만 남은 멀더의 캄캄한 병실을 지나 밝은 빛 속에서 보이스오버로 말을 하는 CSM까지 더듬어 간 팬 역시 인상적이었다. 자기 말을 듣지 못하는 어머니를 절박하게, 나중엔 화가 난듯 소리쳐 부르는 멀더의 보이스오버 녹음도 훌륭하다 - 에코 처리하지 않은 것이 정말 머릿속 멀리서 나는 소리 같다.

     

    - "...the haunting illness which I saw consume your beautiful mind" : 1013 작가들은 가끔 문장으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재주가 있다. 아주 짧았던 Paper Hearts의 "It's somebody, though", 기억나는가?

     

    - "Who do you call?" (from 'Ghost Busters') : 쇠약한 상태에서 힘겹게 시도한 조크, 재미있다기보단 찡하다...

     

    - 그러나 "난 죽어가, 이 얼간아. 일어날 수 있다면 너부터 혼쭐을 내주겠다 (I'm dying, you idiot. If I can get up, I'll kick your ass)"는 모처럼 멀더다웠다.

     

    - 그러나 불길하게도 이 조크벽은 CSM을 닮은 듯 : 이런 외계 유전자를 갖고도 버틴 멀더는 인류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덕담을 늘어놓다 "하지만 수술을 견디지 못할지도 모릅니다"란 DOD 닥터의 말에 멀더를 돌아보며 "그럼 최후도 영웅처럼 맞는 거지 (Then he suffers a hero's fate)"라고 하던 것은 정말 사악한 - 그 쿨한 사악함이 정말이지 매혹적이기까지 한 - 조크였다. "...a simpler life, full of small pleasures. Extraordinary men are always the most tempted by the most ordinary things"나 "You don't think Mulder would've chosen this? To become the thing he sought for so long? To feel what it's like?"란 말에서 알 수 있듯, CSM은 악당답게 자신의 이해와 남의 이해를 전혀 분리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에게 좋은 것은 남에게도 물론 좋다. 자기가 베풀면 상대는 당연히 감사히 받는다... 전형적 메갈로매니아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하는 것은 멀더는 이미 삶을 포기하고서라도 진실을 찾아내겠다는 원맨식 영웅주의를 버린지 오래라는 것이다. Dreamland I/II에서 모리스 플래처가 되어 51지구의 모든 비밀을 캐낼 기회가 생겼는데도 폭스 멀더로 돌아가려 안달이던 그가 생각나는가? 그에겐 이제 삶이 있다 - 스컬리와 함께 하는. 바로 '사랑'이라는, CSM은 듣도 보도 못한 관념인 것이다.

     

    - 크리치고우는 Redux에서보다 성격이 부여되어 훨씬 멋있다. 꺼칠하고, 냉소적이고, 파울리가 손에 든 게 뭐냐고 묻자 약올리듯 천천히 손을 펴 보이는 동작에선 위트까지 있다.

     

    - 크리치고우가 ESP 테스트 기기를 치우려 하자 "One more time. Faster"라고 하던 스키너는 정말 압권... 6E I/II 내내 강하고 하급자를 신뢰할 줄 아는 바람직한 가부장의 전형이다.

     

    - "멀더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 봐요. 그의 앞에 놓여 있던 가능성과 삶을" : 나도 같은 것을 생각하고 가슴이 아팠다. 파일럿에서 처음 보았을 때의 멀더와 7년 뒤 이렇게 희생자가 된 멀더를.

     

    - 페니토인 쇼크로 멀더가 혼수 상태에 빠진 뒤, 정확히 말해 멀더의 시점으로는 의식이 있는데 주위 사람들 시점으로는 의식이 없는 대목에서부터 6E I는 최면성/동화성을 띠기 시작하는데 ('마법의 탑에 갇힌 주인공' 시나리오), 이때 나타나는 파울리와 스컬리에 대한 멀더의 반응 차이가 흥미롭다. 파울리가 멀더에게 키스를 할 때 그의 눈동자에 떠오르던 공포 ("Now we can be together" : 계속 몸을 쓸 수 없게 된다면 이대로 이 여자의 수중에 떨어지고 만다는 깨달음)와 수많은 '소리들' 가운데서 스컬리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한숨을 토해내듯 천천히 눈을 감던 것 - 슬로우모션이 아닌데도 슬로우모션처럼 느껴지는 그 꿈결 같은 눈꺼풀의 움직임은 어떤 대사 처리보다 감동적이었다. (깔리는 음악을 보면 파울리 씬은 감동적이라고 쓴 장면 같지만, 공포를 전달한 DD의 연기 쪽이 더 정확한 것 같다. <x파일>에선 제작진과 DD&GA가 동상이몽인 씬이 적지 않게 발견되는데^^ 대부분 배우들의 판단이 옳다])

     

    - "도망칠 생각을 버리면 저절로 벗겨질 것"이라던 수갑은 파울리가 풀어줘야 했지만 스컬리가 눈물을 흘리는 순간 멀더의 양손을 묶은 수술대의 결박은 금방 사라졌던 것, 의미심장하다 (십중 팔구는 부실 연출이었겠지만 ;-)

     

    - "You've suffered enough" : CSM, 파울리, 심지어 DeepThroat까지 6E I/II에서 멀더와 만나는 모든 사람이 이렇게 속삭인다. 멀더를 유혹, 편안히 잠들게 하려는 주문.

     

    - 글자도 선명한 SPITZ 해바라기씨!!! 대체 광고료를 얼마나 낸 걸까?

     

    - 꿈 속에서였지만, The Morning After의 멀더 : 오홍, 이런 모습이었군... (패닉하는 남자는 아니었어) 거의 수줍어 하는 것이, 겨우 하룻밤 자고 자식 운운하는 뻔뻔한 파울리에 비해 훨씬 청순해 보인다.

     

    - (욕을 하고 나니 미안) 파울리가 병원에 서성인 건 어쩌면 자신의 증상을 알고 멀더가 크리치고우를 불러들일 줄 알아서였을까? 페니토인을 써서라도 자기 안에 든 것이 외계 물질임을 입증하려다 목숨을 잃을까봐? "I won't let you die to prove what you are"란 말은 그런 뜻인 것 같은데... (그렇게 멀더를 도울 거였으면 CSM이 손쓰기 전에 진작 막았어야지)

     

    - 감시 모니터를 가린 스프레이가 편리하게도 엄마 멀더와 담배를 꼬나든 CSM의 손 끝만 보일 만큼 덜 칠해졌다니, 정말이지 귀여운 1013 작가들... ^_^

     

    - 말이 나온 김에, 티나 멀더가 설마 모종의 음모에서 아들을 CSM에게 넘긴 건 아니겠지... 보통 의사들이 더이상 치료할 수 없다는 걸 알고 CSM의 힘을 빌어서라도 아들을 살게 하려고 연락 or 인도했으리라 믿는다 (멀더가 읽은 "I love you, my dear boy", 바로 그 마음에서). 나는 아마 티나 멀더를 미워하지 않는 세상에서 유일한 x-phile일 텐데, 리처드 닉슨도 못 당할 만큼 끝끝내 비밀을 지키는 그녀를 볼수록 그녀의 비밀이 정말로 멀더에게 해로운 것, 모르는 게 나은 사연 같다. 아들이 아무리 진실이 제일이라 부르짖어도 엄마 생각은 다를 수 있으니까 (부모들은 자식에게 정말 거짓말을 많이 한다). 하긴 멀더는 CSM의 도움으로 자길 살린 데 나중에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 6E I/II 내내 스컬리 헤어, 너무 예쁜데 (특히 6E II) 결정적인 라스트 씬에서 도로 헬멧 헤어로 돌아왔다... Biogenesis의 살인적 하이힐도 돌아왔고. 하지만 멀더의 이마에 키스해야 했으므로 특별히 봐준다 (안 그러면 멀더가 너무 많이 숙여야 할 테니까). 그건 그렇고, 진짜 긴 mouth-to-forehead 키스였다...

     

    - 정색하고, 다시 라스트 씬 : 사실 이 장면이, 실제로 보니 없었던 '그리스도의 마지막 유혹' 구도와 함께, 스포일러만 봤을 때의 의혹을 해소시켜 결론적으로 6E I/II에 감동하게 한 결정적 요인이었다. 나는 이 "touchstone" 씬이 감상용으로는 멋지지만 극적으로는 아무 기능 없는, 쉽게 말해 감상주의적 장치가 아닐까 우려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보니 아니었다. 우선 스컬리는, 자신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멀더에겐 과거의 소중한 한 부분이었던 파울리의 죽음을 전화로 알릴 수 없어 멀더를 찾아왔다. 파울리도 자기만큼 멀더를 구하는 데 최선을 다했음을 알려 주어 멀더의 배신감을 달래 줄 필요도 느꼈을 테고 (이 모든 게 내 해석이 아니라 GA의 연기 안에 있다). 한편 멀더는 멀더대로, vision을 믿지 않는 스컬리에게 죽은 호스틴의 방문을 받았다는 심란한 소식을 전화로 전할 수 없어 사무실에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데 소식을 전할 사람은 자기라고 생각한 때 그는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파울리에게서 마음은 떠났는지 모르지만 그는 결코 파울리의 죽음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죽음을 보았다. 과거의 한 자락쯤은 피로 얼룩지지 않고 남길 바랬을 것이다 - 충격에 빠져 있던 그는 "I'm so sorry... I know she was your friend"라는 스컬리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린다.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은 움직임이지만 내게는 이 씬 전체를 살린 연기였다 : 충격에 사로잡혀 딴 곳을 향해 있던 멀더의 시선이 스컬리의 이 말에 다시 스컬리에게 돌아온다. 자기 자신도 멀더의 '친구' 이상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파울리를 멀더의 친구 - 그것도 멀더를 구하는 데 자기만큼 일조한 친구 - 라 부를 수밖에 없는 스컬리가 느낄 불안을 깨달은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 줄 알았던 스컬리가 "I only held you back"이라고 한 순간 그가 처음으로 자기 마음을 입밖에 낼 필요를 깨달았던 것처럼 (FtF), 여기서도 그는 자신의 충격을 접고 스컬리의 불안부터 해소해줄 필요를 느낀다. "touchstone" 대사는 따라서 자신의 파트너는 파울리가 아니라 스컬리라는, 멀더의 삶에서 스컬리가 차지하는 의미에 대해 그녀에게 확신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이 작은 시선의 움직임에서 나왔다 - 대사 하나, 소리 하나 없이 나를 감동시킨 DD의 명연기 중 하나였다.

     

    - 이것 역시 DD의 input이 의심되는(^_^) 대목인데, "I chose another path... another life, another fate, where I found my sister"의 여운이 가시질 않는다. "다른 길을 택해 동생을 만났다"니 - 마치 스컬리와 있는 길은 동생을 만날 수 없는 길이라는 듯. CSM은 "돌아갈 테면 가게. 스컬리와 x파일, 임박한 죽음으로 (You can drive away right now. Back to Scully and your X-Files and imminent death)..." 라고 했지만 이것이 멀더를 편안히 죽음에 들게 하려는 유혹의 시나리오임을 감안할 때 그 반대, '사만다 = 임박한 죽음'이 성립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스컬리 = 자아 = 빛 = 삶 vs 사만다 = CSM = 어둠 = 죽음, 오랫동안 <x파일>의 서브텍스트를 구성해온 이 구도가 이렇게 (아름답게) 공식화된 것, 그리고 거기서 전자를 택하고 평화를 찾은 (=CSM이 죽은 줄 알고 할수 없이 사만다를 포기한 시즌 5 때와 달리 이번엔 진정으로 사만다를 놓아보낸) 멀더의 모습에 이 씬이 주는 정서적 종결이 있다.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아버지가 된 DD가 해변에서 소년과 모래 우주선을 쌓는 멀더의 모습으로 드라마를 마감한 것은 다소 의외였다. 그의 character insight가 빛을 발한 대목이었다 ( 아님 "his pocket of unhappiness"?)

     

    - Last Musing :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6E I/II를 보며 계속 놀라웠던 게 있다. 바로 남성 육체의 대상화 (objectification)다. 여성 육체가 성적인, 혹은 침탈의 대상 (object)이 되는 것은 영화를 비롯한 많은 문화장르에서 흔히 보게 되는 일이다. 그러나 <x파일>에선 남성의 육체마저 성적인 대상이 되고 (Tunguska, Monday), 더욱 놀랍게는 흔히 "violate" 당한다. 다행히 DD는 그런 것을 별로 꺼리는 배우가 아니지만 (너무 안 꺼려서 탈이지 ;-), nudity와는 별도로 남성의 육체가 주권을 상실한 채 침탈되고 실험되는 장면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남성의 시선이 카메라의 눈을 대신한 영화의 세계에서 피해자는 언제나 여성이다. 내용상으로 남자 주인공을 피해자로 가정해도 시각적으로는 그 육체의 유린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영화의 일반적 묵계다. 그러나 Deep Throat에서부터 기억을 도난당하는 멀더와 드웨인 배리로 시작해 회를 거듭할수록 강도와 nudity - 여기선 '섹시함'이 아닌 '무력함'의 코드 - 를 더해가는 <x파일>의 남성 육체의 violation (그와 함께 위에 말한 주인공의 victimization도 심화된다)은, 원래 의도는 무엇이었건, 그 생경함 때문에라도 가해자의 만행을 상기시키는 효과가 있다. (쉽게 말해 여자가 그렇게 당하는 데는 익숙해도 남자가 당하는 데는 익숙치 않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충격 효과)

     

    "Hey, buddy, that's okay. You can build it again. Just start again." - Fox Mu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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